청주의 제일 끝자락에 위치한 ‘벌랏한지마을’
첩첩산중 고립무원의 땅 남아있는 21명의 주민들
닥나무 농사짓고 한지 만들어 생계유지하던 산골마을
소전리 가옥, 2층 별채 중층 목조 구조 한옥

벌랏마을
벌랏마을

 

[동양일보 도복희 기자]청주의 제일 끝자락에 위치한 곳, 벌랏한지마을은 청주의 오지마을이다. 율량동에서 출발해 청주 문의면에 들렀다가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첩첩산중’이다. 초행길인데다 여름날 우거진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니 긴장감마저 돌았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진초록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대청호 물빛이 언뜻언뜻 보였지만 비경을 감상할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앞서가던 이종국(61) 작가의 차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오직 네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차량 한대 보이지 않는 산길을 40여 분쯤 운전해 들어갔다. 마을 초입에 도착하니 40여분 손에 땀이 날 만큼 감돌던 긴장감이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자연이 품고 있는 마을은 고요와 평화로 가득했다.

 


△코로나 전까지 한지 만들기·산골생태 체험 활동 왕성

벌랏마을에 들어서자 ‘벌랏한지마당’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지체험을 하는 곳이다. 이곳은 농촌진흥청에서 지정한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과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돼 청주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코로나 19전까지 전통적 한지 만들기 체험과 산골생태 체험 활동은 물론 계절별로 테마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진행됐다.

벌랏마을 전경
벌랏마을 전경

 

한때 마을은 70여 가구가 살았지만, 현재는 21명의 연로한 주민들만 거주하고 있다. 남아있는 30여 가구 중 9가구는 빈집으로 간간 자손들이 오거나 빈 채로 방치돼 있다. 마을회관 앞 우물이 보인다. 지붕까지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아 관리가 잘된 것으로 보인다. 수도시설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집집이 호스를 설치해 이 우물물을 먹고 산다. 산골의 청정수인 셈이다. 겨울에는 김이 날 정도로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고 했다.

소전리 가옥 본채
소전리 가옥 본채

 

마을 곳곳에는 정자와 벤치가 놓여 있다. 마을에서 깊숙이 들어가 왼편으로 가면 회남으로 가는 길과 이어진다. 청주로 통하는 길이 나기 전까지는 배를 타고 대전으로 왕래했다. 숲을 지나면 벌랏한지마을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선착장이 나온다.
 

소전리가옥
소전리가옥

 

△“고된 삶도 지나고 나니 다 좋은 날이었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최홍순(84·사진) 노인이 농사일을 마치고 올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낯선 이의 방문을 반갑게 맞아 줬다. 때를 놓친 손님에게 집에 있는 사발면 하나를 가져와 선뜻 내주기도 했다. 19살에 시집와 6남매를 키워내고 마을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은 친정인 신탄진을 가기 위해 30리를 걸어가야 하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최 노인은 “빛같이 빠르게 지나간 시절이었다”며 “닥나무를 재배해 종이를 만들어 자손을 키우느라 이곳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의 하루하루는 고됐지만 지나고 나니 다 좋은 날들이었다”고 회상했다.
 

소전리 가옥 별채
소전리 가옥 별채

 

△소전리 가옥 별채, 추녀 서까래 등 근대적 양식

벌랏마을은 임진왜란 때 외진 곳으로 떠나와서 마을에 정착한 주민들이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던 지역이다. 6.25 전쟁도 모르고 지나갔다 할 정도로 외진 곳,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염티소전로 708 벌랏한지마을 그곳에 가면 청주의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소전리 가옥(상당구 문의면 소전리 63)이 있다.

 

1940년경 주거시설로 건립된 소전리 가옥 별채는 목조 구조다. 2층 별채는 한옥으로 드물게 중층구조다. 1층은 36㎡, 2층은 132.34㎡로 기둥 치수, 추녀 서까래 등 근대적 양식으로 지어졌다. 현재는 창고로 사용 중이다. 본채는 100년 전 건립 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원형 보존 상태가 양호해 현재도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소전리가옥 별채
소전리가옥 별채

 

△“벌랏한지마을 서민가옥 청주미래유산 선정해야”

이종국 작가는 26년 전 벌랏에 들어와 닥나무를 재배하며 예술활동을 펼쳐 왔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닥종이 작가로의 인생 2막을 열기 위해 고립무원의 벌랏마을을 자발적으로 찾아들게 된 것. 그는 첩첩 산으로 둘러싸인 만큼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공간에서 닥농사를 짓고 종이를 뜨면서 한지를 부활시키는 데 집중했다. 이곳에서 다시 우리 고유의 종이를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벌랏마을에 있는 이종국 작가의 집
벌랏마을에 있는 이종국 작가의 집

 

이 작가는 “소전리 가옥 한 채만 청주의 미래유산으로 선정할 것이 아니라 벌랏마을에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가옥들도 문화유산으로 선정해 보존해야 서민들의 생활상을 연구할 수 있고 후세에 이를 전할 수가 있다”며 청주의 미래유산 선정에 아쉬움을 전했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