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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신우식 기자]“동네 어른들 말 들어보면 한 500년 전쯤? 진양 하씨 중 하부라는 분이 이 곳에 처음 자리를 잡았고, 그대로 마을이 형성됐다고 하셔요. 예전에 다 그렇듯이 마을 생김새 따라서 이름이 지어졌는데, 돌에 꽃이 피는 마을이래서 돌곶이라고 불렸고, 그게 지금은 한자어로 석화(石花)리가 된 거죠. 항공에서 촬영한 마을 모습도 꽃봉오리 같구요”손승관(73·강내면 석화1리) 이장의 설명이다. 이 마을은 과거 양잠으로 유명해 1964년 양잠특설지구로 지정됐다.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양잠업 장려를 위해 직접 마을
이·통장이 소개하는 우리 동네 이야기
신우식
2022.05.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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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신우식 기자]“동네 이름 때문에 오해를 좀 받고 있는데, 실상은 전혀 다른 의미에요. 조선시대 각 방 군현에 곡물 대여기관인 사창(社倉)이라는게 있어요. 쉽게 말하면 나라의 식량 비축창고 겸, 구휼기관이던 거죠. 그게 있던 동네에요. 1979년 시계탑(사창말고개)을 중심으로 동쪽은 사직동, 서쪽은 사창동으로 명명됐어요”청주시의 중앙부에 위치한 사창동은 1.04㎢면적에 8458세대, 1만4622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청주의 동서를 관통하는 교차지점에 위치해 유동인구도 많은데다, 거의 대부분의 시내버스 노선에도 포함된다
이·통장이 소개하는 우리 동네 이야기
신우식
2022.05.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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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신우식 기자]“마을이 활모양을 닮아 궁(弓)현리라고 붙었다고 해요. 또 다른 이야기로는 삼국시대 백제 땅이었는데, 당시 마을을 지키는 장수로 진 장군이 있었대요. 그런데 고구려가 침공을 해 패색이 짙어지자 진 장군은 활을 꺾고 홀연히 잠적했고, 그래서 활을 꺾은 마을이라 궁현리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최은철(69‧궁현2리) 이장의 설명이다. 110세대, 27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은 20~30세대만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나머지 주민들은 조용한 전원생활을 원하는 각계각층의 낙향 인사들로 구성됐다. 과거 안동 김
이·통장이 소개하는 우리 동네 이야기
신우식
2022.05.0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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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신우식 기자]지경골, 구말미, 분터골, 소징(송정리). 모두가 두산 2리를 칭하는 옛 명칭이다. 고령 신씨, 단양 우씨 집성촌이던 이 마을은 현재 72가구 119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과거에는 단양 우씨가 마을 주민의 2/3를, 고령 신씨가 1/3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별 의미 없는 수준이다. 현 이장인 김나나(여‧53)이장도 이 곳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지만, 마을 주민들과 문제 없이 소통하며 마을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때문에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라는 농담도 나온다
이·통장이 소개하는 우리 동네 이야기
신우식
2022.05.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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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신우식 기자]“우리 마을은 예스러움과 주민 편의를 위한 현대적인 시설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마을로, 선비마을이라는 이명이 있어요. 또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남기고자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서 청소도 열심히 해요. 그래서 마을 앞 하천에도 지금은 보기 힘든 가재도 잡히는 청정지역입니다” 이관일(51·청원구 내수읍 저곡리) 이장의 설명이다. 전주 이씨 집성촌으로 시작된 이 마을은 조선 초 형성됐다. 조선의 시조로 유명한 태조 이성계의 형이 낙향하면서 마을을 세웠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설명이다. 당시 그가 심은 회화나무(통
이·통장이 소개하는 우리 동네 이야기
신우식
2022.04.2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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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신우식 기자]“우리 마을은 3무, 3호가 마을이에요. 자연재해, 범죄, 주민 간 다툼이 없어서 3무, 사람이 좋고, 물이 좋고, 산이 좋아서 3호에요. 마을은 또 용소골, 분티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마을 모양이 과거 술을 거르는 도구인 용수를 닮아서 용수골이었다가 용소골로 변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또 청주 최 외곽지역이어서 좌구산을 사이에 두고 증평과 맞닿아있어 분티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어요.” 송두호(71·상당구 미원면 종암2리) 이장의 설명이다. 이 곳은 청주와 증평의 경계에 위치, 36가구·60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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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식
2022.04.1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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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신우식 기자]“금계리는 청주 곽씨 집성촌이에요. 조선 초기 수양대군이 단종을 시해하고 세조로 등극했을 때 서산군수를 하고 있던 곽비, 충청병마사였던 곽음 형제가 낙향하면서 금계리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게 마을의 시작으로 알고 있습니다.”곽희일(65·옥산면 금계리) 이장의 설명이다. 금계리라는 지명은 당시 낙향했던 곽씨 형제가 이들이 부리던 군사나 노비에게 재물을 풀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살라고 했는데, 이 중 한명이 “그럼 어르신들은 어떻게 사십니까”라며 금 한 덩이를 되돌려 줬는데 곽씨 형제는 “나라 잃은 사람이 금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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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식
2022.04.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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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신우식 기자]“팔봉리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요. 과거 청주에서 바라 봤을 때 산봉우리 8개가 보여서 팔봉리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고, 지금처럼 전원주택단지가 들어와서 동네 규모가 커지기 이전 동네 크기가 봉우리 8개 크기라고 해서 팔봉리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조용한 마을입니다” 김학준(60‧서원구 팔봉1리) 이장의 설명이다. 팔봉리에는 지난달 말 기준 175세대, 399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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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식
2022.03.2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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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신우식 기자]“내덕동의 이름은 안덕벌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했어요. 안덕벌은 덕벌(덧벌)의 안쪽이라는 의미고, 과거 청주시 출범 당시에는 내덕율량사천동으로 묶여 있다가 1982년 분동됐죠. 과거에는 기차역이 있던 곳이어서 사람도 많고 활기찼던 동네였지만, 지금은 너무 조용한 동네로 변했죠. 규모는 커지면서 1동과 2동으로 분동됐지만 다른 동에 비하면 작아요”김상현(68‧청원구 내덕1동) 14통장의 설명이다. 지난 2월 기준 내덕동에는 1만850가구, 2만188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과거에 청주역이 인접 동인 우암동과 경계
이·통장이 소개하는 우리 동네 이야기
신우식
2022.03.2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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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신우식 기자]동양일보는 청주시 43개 읍면동을 마을을 소개하고자 한다. 각 마을 이‧통장들을 통해 마을의 유래, 마을 특징, 민원사항, 특정 사업 등 몰랐던 마을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할 계획이다/ 편집자“우리 마을을 아시는 분들은 거의 없어요. 차로 15분 이내에 대형 마트 2곳이 위치해 있고,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갈등도 없는 마을인데 소문이 아직 덜 난 것 같아요. 과장 조금 보태면 풍경도 청주에서 유럽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인데 말이죠. 하하.”노경우(58‧청주시 상당구 가중1리) 이장의 마을 소개다. 이 곳은
이·통장이 소개하는 우리 동네 이야기
신우식
2022.03.06 18:20